본문 바로가기
일상/일상

칼집

by 시골갱얼쥐 2024. 7. 1.
반응형

칼의 경우 아주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했다. 누구든 아는 정말 흔한 말이다. 그것은 누군가를 해치는 용도로 쓰이지만 살릴 때도 쓰인다고.하지만 나는 문명의 이기인 칼을 쓸 수 없었다.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어느 무엇도 되지 못했다. 우유부단한 그에게 칼을 휘두르는 당신이 찾아왔다. 그에게 상처를 입힌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다. 아니, 생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칼집에게 당연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 쓰임을 다하는 칼집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과거부터 오랜시간동안  칼날을 보호하는 칼집들은 여러 방향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런 칼집들처럼 나도 당신의 변화에 맞게 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항상 성장하며 서로를 관측하여 맞춰온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당신은 당신이 되고 싶은 칼이 되길 바란다. 그런 당신을 보며 나는 늘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느낀 당신은 아주 곧은 사람이었다. 당신은 나에게 박혔다. 

칼집은 훈을 나타내는 革(가죽 혁)과 음을 나타내는 肖(닮을 초)가 합쳐진 형성자이다. 서로를 닮아가는 가죽이라면 당신의 칼집이 내 꿈이라고 해도 좋을까. 덧댄 가죽은 마치 부서지지 않는 듯한 용맹함을 보인다. 내 살가죽으로 만든 칼집을 당신은 좋아해 줄까.과거에는 칼집의 문양등이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냈다고 한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그것들은 영혼의 연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만약 나를 고르지 않더라도 쇼윈도에 비친 나의 모습이 부디 당신의 자랑이 되길 바란다.

나를 뚫고 당신의 칼이 성장한다고 한들 나의 가죽을 덧대어 칼날이 상하지 않게할 것이다. 당신의 성장이 기대된다. 나의 심장가죽을 뚫고 나아간 당신이 사랑스럽다.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정말로 혀가 마음에 상처를 내는 칼이라면 내가 당신의 칼집이 될 것이다. 몇 번을 난도질당해도 그저 나는 당신이 돌아올 집이길 원한다. 있을 장소라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나의 자리에 우두커니 바로 서서 당신이 안전히 쉴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언제나 있던 장소에서. 당신의 방향으로 굽어버린 가죽의 형상이 나무가 될 때까지. 투박한 가죽의 녹음이 넓게 펼쳐져, 당신의 잔상에게 그늘을 씌워줄 때까지 기다린다. 그도 그럴 것이 당연히 그럴 것이다.

반응형

'일상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필사  (0) 2024.07.02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0) 2024.07.02
'24 상반기 안부  (0) 2024.06.30
새벽러닝 후에  (0) 2024.06.29
324층 크로와상  (0) 2024.06.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