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

레이저 제모

시골갱얼쥐 2024. 12. 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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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레이저 제모를 이번에 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엄청 아프지는 않네요. 저도 모량이 좀 많고 굵은 편인데도 할 만했어요. 수염도 꽤나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습니다만, 그래도 추구미라는 것이 있으니 시원하게 정리했어요. 뭐, 몸에 털은 제모할 생각 없으니까 괜찮겠죠. 자꾸 깎아야 하는 수염 말고는 저는 제 털이 복실복실해서 참 맘에 들어요.

그나저나 신기하게도 털이 타서 딱 붙은 것처럼 수염이 밀리지가 않네요. 처음 피부과 시술을 받아봤는데 레이저도 참 신기하더라고요. 또 이리저리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왜 또 대체 뭘 배웠냐면요...

20살,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만 해도 남성호르몬이 많이 안 나와서 그런지 털이 별로 없었어요. 매끈매끈했고요. 20살로부터 5년 뒤, 수염 레이저 제모를 권하셨던 게 생각나요. 수염 자국을 보시고 적잖이 충격을 받으셨을까 생각도 드네요. 그래도 소년이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이 이야기의 플롯은 오롯이 저와 당신만이 쓰고, 이 필름의 상영관 입장 또한 당신과 저만이 할 수 있을 거니까요.


다른 이야기인데, 여기서만 하는 이야기예요. 등 있잖아요, 제 등. 당신한테밖에 보여준 적이 없어요. 웃기지 않나요? ㅋㅋㅋ 그게 뭐라고 싶으실 수도 있는데, 그게 당시 저한테는 모든 것이었어요. 제 자신도 보기 싫어서 손에 꼽을 만큼 봤던 제 가슴과 등. 지금은 부끄러운 것이 없지만, 습성만큼은 아직 남아 있어요.


"머리 묶는 연습을 하면 좋아지지 않을까요?"라고 했던 제가 당신께 들었던 말.
"설마 저를 연습대로 삼을 생각은 아니죠? 제 머리로 그러시면 안 돼요."라는 말에, 제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요.

아마 "집에 가발이 있어요."라든지, "집에 누나들이랑 엄마가 머리가 길어요."라든지 그런 이야기를 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결국 제 마음에 남은 단어는 "연습"이에요. 당신을 연습으로 삼는 것이 불가능해졌어요. 제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필연적으로 당신은 연습이 되어버리는 거니까요. 그저 당신을 연습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제 모든 것을 보여드린 당신께 어찌 그런 취급이 가능하겠습니까.


저 자신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로봇처럼 태어나, 배운 것밖에 도출하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어떠한 역할극을 하려 하지 않고, 어느 누구를 연기하지 않으며 당신과 접했던 것이 제게는 아직까지도 크나큰 영광이자 추억이에요.

아무런 선택도 못하는 과거의 저를 기억해주시고, 삶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지금의 저도 알고 계시니, 앞으로는 어떤 저를 보여드릴 수 있을지 기대되네요. 당신의 관심을 사는 것 또한 제 에고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라, 상상을 아예 막지는 않겠지만 이게 제 삶의 주된 목적은 아니에요. 이미 그리 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어차피 이루어질테니, 현재에 집중하고 덩실덩실 춤추는 것이 목적이에요. 언젠간 꼭 자신만의 춤을 추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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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레이저 제모를 기회로 당신에게 배운 것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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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느끼는 지금, 7살 유치원 때로 돌아간다면 그리고 싶은 상의를 그리는 것에 주저함이 없을 것 같아요. 어떻게 옷을 그리는지 몰라서 저녁 늦게까지 울고있는 제 자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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