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

이름 붙이기

시골갱얼쥐 2024. 12. 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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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렸을 때, 베개에 이름을 붙이려 했어요. "이 친구는 무엇이고, 저 친구는 무엇이고..." 분명, 나를 물건에 투영해 알아주길 바랐던 마음이었을 겁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나'라는 개념을 배우고, '나의', '나를', '나에게' 등 일상적인 용법에서 치명적인 허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에고가 '나'를 점령하는 순간, 저는 진리의 한 조각을 깨달았습니다. 나를 3차원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 그리고 나의 마음(에고)을 꿰뚫어 보는 것을 자연스럽게 해냈던 것이죠.

아이들이 물건에 자아를 투영하는 현상은 바로 'identification'(동질화)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해요. 라틴어 'idem'(같게)과 'facere'(만들다)가 합쳐진 단어로, '같게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죠. 그렇다면 아이들은 사물 등을 "나와 같게 만들어서" 어디에 사용하려는 걸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진리의 편린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의미가 있더라도, 결과는 시원찮을 수 있죠. 왜냐하면,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서 '내부의도'를 찾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외부의도가 아닌 내부의도(마음, 에고)를요. 이런 에고는 쉽게 부서질 수밖에 없겠지요.

결국, '나의 것'이 아닌 '나'가 바로 서야 한다는 것. 당신이 말했던, "명품보다 자신이 명품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교집합이 있네요. 예전에 들었던 이 말이 뼈 있는 조언이었음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하신 말씀이었겠지만요.

오늘 명상으로, 저는 이제 알아요. 무언가를 통해 나를 겹쳐 보는 것은 의식적으로 그만하려 해야 한다는 것을요. 그저 나를 투영하여 주변을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주려했던 것은 그저 나를 불쌍히 여기는 제 에고가 작동한 것을 이제야 알아요. 모든 것은 그저 '나'가 중요했던 것을 모르고 있었네요. 또한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에고(집착)는 언제든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에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 영혼이 리듬타는 대로, 우주가 주는대로 덥썩 받아먹고, 재밌게 살아보겠습니다. 길은 제가 밟는 순간 생기는 것이니, 이 자유를 즐기면서 :) 

(스릴 넘치는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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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레이저 제모를 하고 왔어요.

허허.. 옆에 곰돌이가 아주 큰 일을 했습니다. 좀 따끔했는데 만족합니당.. 깔끔하네요.. 앞으로 9회 더 남았어요... 디퓨저 향도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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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직장 옆 공원에 이렇게 12지신 동상이 있어요. 이거 저녁에 보면 분명 무섭겠는데 싶더라고용 ㅋㅋㅋㅌㅋ 뭐 이런 걸 다 갖다 놨을꼬

오늘 점심은 푸짐~하게 먹었어요. 사딸, 김밥, 육비!

여기 육회가 맛있어요 ㅋㅌㅋ 그런데 여기보다 맛있는 곳이 아마 위쪽 지방에는 더 많을 거라서 먹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 했어요. 흐흐. 과일은 좀 먹여드리고 싶긴 하네요. 아무래도 과일은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잘 안 먹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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