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혼잣말
고기 굽는 소리에 거실에 나가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소리에 반가워도 했지만 이 계절을 오래 살아야 할 나 자신이 걱정되기도 했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에 선 나는 그 날들을 항상 떠올리곤 한다. 비를 쫄딱 맞아도 밖에서 기다리는 나, 당신에게 혼나는 나, 비를 피해 함께 들어온 작은 빌딩. 습한 향기. 시트러스와 베르가못의 향취가 코 끝에서 사라지지 않는 내 청춘. 첫사랑.
나는 당신과의 순간이 금방 지나갈 것을 알고 있었다. 데구르 굴러가는 우리는 맞지 않는 톱니처럼 맞물리지 못하고 다시 저마다의 길로 굴러간다. 굴러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본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알려주셨던 자전거. 잘 굴러가는지 나의 뒷모습을 한참이고 바라보았던 따뜻한 눈길을 기억한다. 피는 속일 수 없는가 보다. 그렇게 훌훌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사랑인가 보다.
항상 당신을 기다리는 나는 이제야 26살이다. 언젠가 모든 곳을 둘러본 당신. 이제는 한 바퀴를 돌아 내게 다시 기회가 올 때를 기다린다. 모든 장소에 당신의 바퀴자국이 남기도 했을 것이고. 너덜너덜 해졌겠지만 나는 그럴 당신을 기다린다. 믿고 또 믿고. 제자리에서 기다리는 것이 나의 사랑이라면. 이 자리에 높이 탑을 세워 많은 것을 볼 것이다. 당신이 보지 못했던 바다 넘어까지 보일 수 있도록 새로운 것들을 준비하려 한다.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문항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멀리서도 찾아올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 보일 것이다.
넘어지더라도 우리는 다시 노련하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없어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이 나를 슬프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자랑스럽다. 대견하다. 서로가 서로의 가르침을 받고 나아간다는 것은 나를 웃음 짓게 한다. 다른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아,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이 아니게 되더라도. 그 경험을 가진 당신마저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
가능성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한다. 당신이 나로 하여금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조금 욕심을 부리자면 내 곁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고기를 좋아했던 당신. 빗소리에서도 당신을 느끼는 가을이다. 이런 가을에 혼자 작은 카페에 오게 되었다.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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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의 마지막 날, 비가 와서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도 생각하지 않은 채, 집 옆의 카페에 달려갔습니다. 그래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아마 정답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24년 10월 3일의 오후의 최혜원은 그러기로 결정했습니다. 가서, 아주 달고 단 음료를 먹으리라 결심했습니다.
바지 밑단은 다 젖어왔지만 그것 또한 비가 주는 은혜였겠지요. 갑자기 비가 와서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한 사람에게 우산을 쥐어줬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주고 왔습니다. 제 목적지가 바로 옆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우산도 필요한 사람에게 쓰이는 것이 행복하겠죠. 우산 입장에서 보면 일을 조금 더 해야 한다는 불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사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우산의 생사여탈권은 바로 나. 최혜원에게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카페로 향하는 도중에는 많은 것들이 보였습니다. 울퉁불퉁한 도로에 고여있는 물에 큰 물방울이 떨어져서 보이는 비의 꽃. 저 멀리 보이는 주인에게 폭 안겨, 감겨있는 강아지의 눈. 일 시마이치는 아저씨들과 철골들이 부딪히는 소리. 빨간 날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택배기사들. 이런 배경 속에서 비를 맞는 제 자신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저 짝사랑하는 소년일 뿐이지만 이야기에 완벽히 녹아들어 있다는 생각에 두근거렸습니다.
코 끝에 맴도는 비릿한 가을의 향. 가로수에 있는 매미들의 한 철 장사는 시즌종료를 알리고, 빠알간 포장마차들이 따뜻함을 밖으로 풍기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기에는 따뜻했지만 가까이 보면 당신과 안겨 잠들었던 밤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뜨거움을 내풍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멀리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항상 보이는 알바생분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안에 들어가 주섬주섬 노트북을 꺼냈습니다. 몇 자 적어봅니다만, 그리 술술 적히는 하루는 아니네요. 쉬기로 마음먹었던 연휴니까 이 정도로 봐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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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 라떼를 마실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카페서, 당신이 마셨던 바닐라 라떼가 적힌 메뉴판을 보면 그 자리에 서서 몇 분을 보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드시던 연어알 삼각김밥까지 그 장소가 머리에 다시 재생되는데, 정말 저는 구할 방도가 없는 바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보는 싫어하신다고 했는데. 하하.. 제가 그 바보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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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장을 슬슬 준비해야겠어요. 당신의 한 해가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가끔 웃음이라도 줄 수 있도록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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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당신은 기억 못할 놀이터겠지만, 저는 정말 큰맘먹고 여기까지 왔어요. 카페 바로 앞이긴 한데, 여기를 볼 여유가 없더라고요.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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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런 생각들을 하며 카페를 잘 즐기고 왔습니다. 가끔은 우울을 즐기는 것도 참 좋네요.
아! 그리고 더 리터 블루베리 스무디 정말 맛있네요 :) 슬슬 자색고구마 라떼도 한 번 먹으러 더 와야겠어요. 내일 다시 일을 가야하니까 슬슬 글 마무리 하겠습니다. 좋은 연휴 되셨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