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가장 소중한 것을 주고 싶을 때, 나는 당신에게 받은 그림을 주섬주섬 꺼내었다. 그렇게 당신이 그렸던 그림은 다시 당신에게로 돌아갔다. 줄 것이 없어 당시, 내 전부를 주었다. 몸도 마음도 가진 돈도, 보물로 여겨왔던 당신의 그림도. 너무 소중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도 없는 보물들을 다 내주었다.
모든 것을 다 주고 난 후에는 나한테 뭐가 남냐고? 글쎄. 그게 과연 지금의 나라고 할 수 있는 걸지. 새로운 내가 또 무언가를 쌓겠지. 그러고 나면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들도 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당신은 본인도 받은 것을 다 주어야 하냐고 되물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당신에게 오직 받고 싶었던 것은.... 글쎄..... 나는 당신에게 어느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바라는 것이 싫어서도, 받는 것이 서툴러서도 아니다. 이미 다 받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준 뭉티기를 먹고 속이 안 좋은 당신을 앞에 두고 1분. 어쩌면 5분이 되는 시간 동안 고민 후에 꺼낸 말은. 손사래 치며 "아니요, 괜찮아요."였다. 당신은 내 말을 듣고 내 생각까지 유추할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당신에게 줄 수 있음에 소중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신을 만나기 전엔 나의 몸, 마음, 돈 어느 무엇도 소중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아껴줄 수 있게 해 준 당신에게 고맙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이 나를 아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어린 핏덩이 같은 우리들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성장을 해낸 것이 마냥 기쁘다.
지금도 가방 속에는 소화제가 2병 들어있다. 이 소화제는 유통기한이 다되기 전에 새것으로 교체된다. 나의 이런 행동을 보면 동물원에 묶여있는 코끼리인지, 아직 성장 못한 애새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마냥 싫지 않다는 것. 변화의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 * *
어렸을 때, 나는 물건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 싫었다. 내 연필, 내 가방, 내 옷... 심지어는 컴퓨터에 있는 내 컴퓨터 폴더마저 바꿔버렸다. 누나들이 물려준 것들의 흔적을 나의 흔적으로 덮어씌우는 행위. 그 물건을 책임질 수 없었기 때문에 함부로 붙이지 못했다. 때문에 물건이 없어지더라도 잃어버린 것에 대해 인색했다. 잃어버린 것들은 주인을 찾아갔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훗날 나의 행위에 대해 이름표를 붙인 것뿐이다. 사실은 그저 잃어버린 것뿐인데 말이다. 이렇게 나는 책임지는 방법들을 배워갔다. 회피하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바뀐다. 어떨 때는 제품에 대한 PR이 될 수도 있고, 행동의 근거를 말할 때도 있고. 그것이 변명이 될 때도 있다. 이름이라는 것은 언제나 바뀐다.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1가지의 이야기가 무한가지의 나무가 될 때도 있을 것이다.
상황은 언제나 일어날 뿐이고 그것을 곱씹고 판단하며 과거를 관측하는 것은. 그 의지가 있는 것은 바로 "나."이다.
책을 덮고 나의 행동에 대해 면죄부를 묻는 자신이 거기에 서있다. 내 책의 이름과 결말을 지어야 한다.
모든 일은 이미 일어났으며 이 일을 판단하는 나와 당신이 있을 뿐이다. 필름에 있는 32m과 33m에 있는 지점을 잘라 단두대에 올려 보낸다. 이미 잘라진 것들을 다시 한번 반도막으로. 그것을 다시 접어 고이 넣어놓고 32.5m~33m의 나에게 죄를 묻는다.
그리고 일어난 일에 이유를 붙이는 것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일어나는 것은 자신에 의해 이미 정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