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고찰
* 자초지종
앞으로 행복할 일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양의 말에서 시작된 생각입니다. 분명 알고는 있어요. 행복 0을 기준으로 -1과 1 정도를 왕복하는 행복 그래프도 삶의 방식 중 하나로 나쁘지 않다는 것을요. 하지만 주변인으로서 제가 그런 생각을 해서 되겠습니까. 그건 본인이 하는 생각이지 제가 해야 하는 생각이 아니니까요. 어떻게든 @양 행복 평행선의 기울기라도 꾸준히 우상향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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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태 신은 제 자신이라 생각했어요. 自身이 自神에서 온 것일 수도 있잖아요. @양 세계는 당신이 신이고 김 아무개 씨는 또 그 김 아무개 씨가 신이겠죠. 그 이유는 본인의 세계 안에서는 본인만이 전지전능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본인은 본인을 통제할 수 있고 누구보다 자유롭고 창조를 일삼을 수 있으니까요.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이유는 오직 당신이라는 신의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위한 소과제로 요새는 도덕성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도덕이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놓은 일종의 규칙. 사회의 올바른 규범 등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이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어린아이들은 1차 사회인 가족, 2차 사회인 학교를 통해 3차 사회를 준비해요. 그런데 이것들은 교육으로 충분한가? 에 대한 물음이 떠나질 않아요. 도덕을 지키기 위해서는 관계라는 것이 필요불가결한데 관계를 윤택하게 하는 것이 과연 교육만으로 충분할까요? 가족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상사와의 관계들에 대해 도덕이라는 울타리가 완벽하게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유는 도덕성 없이 세워질 수 없고, 도덕성은 신앙 없이는 세워질 수 없다."라는 조지 워싱턴의 말처럼 신과의 관계가 마지막 피스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해당 위인은 제가 하고 말하고 싶은 뜻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겠지만요.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그것을 대행하니 이웃 및 지역사회와의 관계들이 돈독한 거라 생각하거든요. 마치 미국 사회에서의 알지 못할 동네 사람들의 끈끈함, 우리나라가 잃어버린 "정"과 같은 특성들 말이죠.
그래서 저는 도덕이라는 것은 학문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시켜서 하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라면 전통적으로 큰 어르신, 보수적인 사람들, 나쁘게 말하면 옆에서 계속 교육해 줄 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물질이 가장 중요하다고들 하고 가족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어버렸는데요, 이것은 분명 신의 자리에 도덕을 올려놓은 폐해라고 생각해요. 너무 급성장으로 어르신들을 포함한 모두가 빠른 변화에 적응하려 노력한 탓도 있겠고요. 하지만 누가 도덕을 지켜야 하는 것을 모를까요. 하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지 않는 것이 문제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기 위해서는 신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게 되는 거고요.
최근에 유튜버 보겸씨가 기부를 많이 하시던데 그것들을 보고 일부 사람들은 말해요. "위선이다.", "왜 그러냐", 엎친데 덮친 격으로 거지 같은 사람들도 불행팔이를 하면서 들러붙기도 해요. 제 생각대로라면 기부를 위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신을 믿지 않는 사람임이 분명할 거예요. 본인들이 선하지 않으니까 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되려 공격하는 거죠. 도덕 같은 것들은 그저 탁상공론에 불과하고 세상에 따뜻함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겠죠. 객관적인 수치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제가 예시든 것이 맞다면 신을 믿는 것은 높은 확률로 행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정리하자면 우리나라 불행의 근원은 "정"이 사라진 사회이기 때문이기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덕을 신과의 관계로부터 배워야 하며 그 주체는 종교마다 다르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기독교에서는 그것이 하나님이 될 것이고 불교에서는 자기 자신이 될 것 같네요. 자유를 위해서는 범우주적인 신에 의한 통제(자기 자신의 믿음과 감사)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고작 학문으로서의 도덕은 통제성이 너무 낮으니까요.
에피쿠로스를 제외한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야기를 참고했어요. 차례대로 에피쿠로스는 물질,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과 사람과의 관계, 아우구스티누스는 진리 속의 즐거움. 즉, 신과의 관계를 통해 행복을 논한 사람이거든요. 물론 에피쿠로스도 어느 정도 필요한 이야기이겠지만 본질적인 것은 (줄여서) 아리스와 아우구의 이론이 핵심적이라 생각해요.
동아시아에서 에피쿠로스가 생각하는 물질적 행복이 주류를 이루는 이유는 아까 말했듯, 신의 자리를 비우고 도덕성이라는 인간 개개인의 양심에게 맡긴 것이 아주 크지 않을까 싶어요. 책임지는 신이 없기 때문에 인간 본성대로 악해진 것이 아닐까요. 동아시아의 모두가 불교의 부처처럼 신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누구나가 본인의 도덕을 책임지고 지속적인 성찰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아마 자신이 믿는 신이 없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본인의 도덕성을 최소화하고 여차하면 쾌락주의에 빠질 것 같아요.
아무튼 결과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당신이 더욱 행복하기 위해서, 누군가와의 관계에 좀 더 집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본인과 자기 자신(神)과의 관계에서 감사함을 통해 경애를 표하거나 혹은 당신이 허락하는 다른 타인과의 관계와 경험을 통해서 말이죠. @양, 당신 세계의 신은 당신이니까 당신이 원하는 것들을 마음껏 창조하고 여러 관계들을 통해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본인만의 세상을 넓히는 행복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자기 세계에 갇혀있는 유튜브 알고리즘 같은 삶 말고요. 제가 느꼈던 가장 큰 행복은 당신을 만났을 때니까 그것도 조금 참고했어요.
물론 제 이야기들은 "신은 무조건적으로 옳다."는 안이한 생각, 이분법적 사고들, 짧은 견식으로 인한 얕은 글이며 행복이라는 개인적이고 다원적인 개념을, 신이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풀어낸 글이겠지만 오늘은 이런 생각들을 해봤었어요.
글의 마지막으로, 당신만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제 성찰들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당신 주변까지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이유도 있을 수 있겠네용. 한국에서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지역사회와 단절된 사람들이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면 좋을까도 고민을 좀 해봐야할 것 같아요. 그래야 @양이 있는 지역에 있는 사람들도 행복해지고 행복한 사람 옆에는 행복한 사람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보여드린 적이 있잖아요? 편하고 자연스럽게 행복에 물들 수 있도록 나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가을마다 당연하게도 당신의 머리색처럼 물드는 홍엽처럼요 :)
아! 이제는 아니네요. 지금은 어떤 머리색이실지 궁금하네요 흐흐.
여담으로, 많은 ENFJ들이 만약 저와 비슷한 느낌의 신념 혹은 철학을 갖고 있다면 그게 아마 ENFJ가 성직자와 잘 어울리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사이비나 사기꾼같기도 할 것 같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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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큰누나한테 받은 와인인데 분명 맛있었거든요? 그런데 집에서 블루베리 담금주 담근 것도 진짜 맛있는 것 같아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찌만 저는 토속적인 게 참 맛있는 것 같아요. 물론 세속적인 맛을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요. 한 1~10 세속과 토속의 비율이 있다고 한다면, 한... 7 토속적인 것이 좋아요. 헤헤.. 토신님 다음에 블루베리주 꼭 한 잔 하시죵!
변변찮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